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 A사는 현지 거래처와 물품 공급계약을 맺으며 대금을 "USD"로 적었습니다. 환율 변동을 피하고 본사 회계와 맞추기 위한,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대금 분쟁이 생겨 소송에 들어가자 상대방은 뜻밖의 주장을 폈습니다. "이 계약은 외화로 대금을 정했으니 효력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라면 낯선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주자끼리 달러로 계약금액을 적어도 그 자체로 곧바로 계약이 무효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다릅니다. 오늘은 베트남 계약에서 대금을 외화로 정해도 되는지를 원칙과 예외, 그리고 위반 시 효과까지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원칙: 베트남 안에서는 '베트남 동(VND)'입니다
자국 통화 사용을 강제하는 외환관리 법령
베트남은 자국 영토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래에 베트남 동(VND) 사용을 원칙으로 강제합니다. 근거는 외환관리조례(2005년 제정, 2013년 개정)와 시행규칙 32/2013/TT-NHNN입니다. 이 규칙 제3조는 베트남 영토 내에서 거주자·비거주자의 모든 거래, 지급, 가격 표시, 광고, 견적, 그리고 계약상 금액 표시를 외화로 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단순히 "달러로 결제하지 말라"가 아닙니다. 계약서에 금액을 외화로 '적는 것' 자체가 원칙적으로 제한됩니다. 국가가 통화 주권과 환율 안정을 지키기 위해 두는 강행적 외환관리 규정입니다.
이 점이 한국과 크게 다릅니다. 한국은 거주자끼리 외화로 표시한 계약도 원칙적으로 계약 효력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고, 필요한 경우 외국환거래법상 신고·지급절차의 문제로 관리합니다. 반면 베트남은 "영토 안에서는 원칙적으로 VND"라는 강한 원칙을 두고, 허용되는 경우를 좁게 열거하는 방식입니다.
예외: 외화 표시·지급이 허용되는 경우
수출입·FDI 등 열거된 예외와 '표시 vs 지급'의 구분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시행규칙 32/2013/TT-NHNN은 외화 표시나 외화 지급이 허용되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열거합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경우 외화 표시나 외화 지급이 허용됩니다.
✓ 외국인투자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외화 출자
✓ 수출입 위탁계약, 수출가공기업(EPE)과의 일정한 거래
✓ 면세점 판매, 보세창고·국제공항·국제항만 관련 일부 서비스
✓ 외국 운송회사의 대리점 거래
✓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임금·상여·수당 지급
✓ 비거주자와의 일정한 수출거래
✓ 중앙은행(SBV)의 승인을 받은 경우 등
여기서 실무상 가장 중요한 것은 '금액 표시'와 '실제 지급'을 구분하는 감각입니다.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계약서에는 금액을 VND로 적는 것이 안전합니다.
환율 위험을 관리하고 싶다면, 최종 계약금액과 지급통화는 VND로 두되, 환율 변동을 반영하는 조정 방식을 별도로 정교하게 설계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 핵심: "USD 기준으로 하되, 지급일 환율로 환산한 VND로 지급한다"는 식의 조항은, 실제 외화 지급 조항보다는 위험이 낮을 수 있습니다. 다만 베트남 외환규정은 외화를 기준으로 한 계약가액의 환산·조정도 제한 대상으로 볼 수 있으므로, 환산 기준·적용 환율·기준일뿐 아니라 해당 거래가 예외에 해당하는지까지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어기면 어떻게 될까: 계약 효력과 과태료
무효 리스크와 행정제재, 두 가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외화로 대금을 정했을 때의 위험은 두 갈래입니다.
첫째, 계약의 효력 문제입니다. 외화 표시를 강행적 외환관리 규정 위반으로 보아 해당 조항이나 계약의 효력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실무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2015년 민법 시행 이후 베트남 법원과 중재 실무에서는 계약 전체를 곧바로 무효로 보기보다, 실제 지급통화가 VND였는지, 외화가 단순 산정기준에 불과한지, 위반된 규정이 민법상 무효사유인 "법률상 금지"에 해당하는지 등을 함께 살펴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상대방에게 "무효" 주장의 빌미를 주는 것 자체가 큰 리스크입니다.
둘째, 행정제재입니다. 외화로 가격을 표시하거나 계약금액을 적고, 또는 외화로 대금을 지급하면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2026년 2월 9일부터 시행된 Nghị định 340/2025/NĐ-CP 기준으로, 외화로 거래·견적·가격표시·계약금액 표시 등을 한 경우 개인은 3천만~5천만 동, 법인은 통상 그 2배인 6천만~1억 동 수준의 과태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외화로 물품·서비스 대금을 지급한 경우에는 지급액 규모에 따라 경고 또는 과태료가 부과되고, 법인의 경우 금액 구간에 따라 최대 1억 6천만~2억 동 수준까지 문제 될 수 있으며, 일정한 경우 위반 외화 또는 VND가 몰수될 수 있습니다. 계약이 유효한지 여부와 별개로 행정처분은 별도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 결국 외화 표시는 "돼도 그만"인 선택이 아니라, 계약 효력과 과태료라는 이중 위험을 안는 결정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FAQ)
Q. 한국 본사와 베트남 법인 사이의 내부 거래도 VND로 해야 하나요?
같은 그룹 내부 거래라도 한국 본사와 베트남 법인은 별개의 법인입니다. 국경을 넘는 수출입 대금, 외국인투자 자본금 납입, 해외차입금, 비거주자와의 일정한 서비스 거래 등 예외에 해당하면 외화 사용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베트남 내 거주자 사이의 국내 거래라면 원칙적으로 VND 기준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거래가 '베트남 영토 안'에서 이루어지는지, 당사자가 거주자인지 비거주자인지, 예외 유형에 드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Q. 계약서에 "USD 기준, VND로 지급"이라고 쓰면 안전한가요?
실제 외화 지급 조항보다는 위험이 낮을 수 있습니다. 다만 베트남 외환규정은 외화를 기준으로 한 계약가액 환산·조정도 문제 삼을 수 있으므로, 적용 환율과 기준일을 명확히 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개별 거래가 예외에 해당하는지, 최종 지급통화가 VND인지, 세금계산서와 회계처리가 VND 기준으로 정리되는지도 함께 검토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이미 USD로 계약을 맺었는데,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부속합의서나 변경계약으로 통화 조항을 VND 기준으로 정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분쟁이 생기기 전에 정리해 두는 편이 훨씬 유리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베트남에서 계약 대금을 외화로 정하는 문제는 단순한 통화 선택이 아니라, 계약 효력과 과태료가 걸린 규제 사안입니다. 원칙은 VND, 예외는 좁고, 위반의 대가는 작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계약 통화 조항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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